'메모들/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5.06.09 작은 기도 1
  2. 2005.04.25 내가 여전히 나로 남아야 함은 / 김기만
  3. 2005.04.06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1
  4. 2005.03.30 비 치는 남도(南道)
메모들/시2005. 6. 9. 17:56
<작은 기도 >

-이 정 하 -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게 하소서
그리움으로 가슴 아프다면
그 아픔마저 행복하다 생각하게 하소서
그리워할 누가 없는 사람은
아플 가슴마저도 없나니


아파도 나만 아파하게 하소서
둘이 느끼는 것보다 몇 배 더하더라도
부디 나 한 사람만 아파하게 하소서
간구하노니
이별하고 아파하는 이 모든 것
그냥 한번 해보는 연습이게 하소서
다시 만나 더욱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다시는 헤어져 있지 않게 하기 위한
그런 연습이게 하소서.
Posted by ketchup
메모들/시2005. 4. 25. 13:51
내가 여전히 나로 남아야 함은 / 김기만


끝없는 기다림을 가지고도
견뎌야만 하는 것은
서글픈 그리움을 가지고도
살아야만 하는 것은

소망 때문이요
소망을 위해서이다

그대 사랑하고 부터
가진게 없는 나 자신을
그토록 미워하며 보냈던 많은 날.

가을 하늘에 날리는 낙엽처럼
내겐 참 많은 어둠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내가 여전히 나로 남아야 함은
아직도 널 사랑하기 때문이요,
내가 널 잊어버릴 수 있는 계절을
아직 만나지 못한 까닭이요,
그리고
뒤돌아 설 수 있는 뒷모습을
아직 준비하지 못한 까닭이다.
Posted by ketchup
메모들/시2005. 4. 6. 00:43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세계사, 1989)
Posted by ketchup
메모들/시2005. 3. 30. 15:42
비 치는 남도(南道)

고형렬

길을 가다가 비를 만났다
남의 집 처마 밑에 들어가서
비를 피하고 내리는 비를 내다본다

떠나가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빗방울이 발등에 떨어지고
한번씩 휘익 치고 지나가는 찬바람에
빗방울 가루가 가슴에 후드득 뿌린다

새삼 저는 누군가를 찾아가는
사람이 되어가는가 어인 일로
기다리듯 기웃기웃 저쪽을 내다본다
문 닫힌 가게 하나가 간신히 보이고
미루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자동차도 지나가지 않고 비만 지나간다

비는 이내 그칠 것 같지 않고
방안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나는 얼마만의 나그네인가
Posted by ketch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