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잡다한 일상2004. 10. 14. 00:56
1. 캐나다 연수시절의 중국인 연수생 모다니스.
3월에 연수를 시작해 우린 처음 만났고 4월에 시즌 마지막 스키장을 갔다.
반 사람들이 즐겁게 서로 배우고 놀고 있을때, 유독 그는 진지하게
혼자서 자세를 잡고 남들이 하는것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애들이 가르쳐줄테니 가까이 오라고 해도 들은척도 않고
혼자서 천천히 천천히 스키가 눈에 닿는 감촉을 즐기면서
혼자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만
평생 처음 타는 스키, 처음타는 기분을 간직하고 싶어서였다고 대답했었지. 처음이 중요하다고. 처음이 중요하다는 말.

뭐든지 처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 사람은 세상에 많이 있지만,
그 말을 나에게 가장 와닫게 한 사람은, 그였다.

퇴근하고 홍대 살사바 바이하 를 갔다.
처음 가보는 잉카 이외의 살사바, 사실 잉카는 강습하는 낯익은 장소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살사바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단 말이지.

평일인데도 꽉꽉 차는 좁은 바. 좁은 공간에서 동작을 취하면서
밖은 추운데 안은 열기로 꽉꽉 차서 더웠다.

오늘은 스탭을 한발자국도 밟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관찰.
처음엔 분위기가 낯설더니 한시간쯤 후엔 나도 후끈 달아오르더라
그 생생한 표정들. 즐거운 표정들과 동작들..
나도 저렇게 즐겁게 추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말 다른 세상이지.

이 느낌이 나의 살사바 처음의 경험. 이다.

2. 내 얼굴은 그리 호감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말 한마디도 안하고 있을땐 무서워 보이기 까지 한다.

대학들어와서는 말이 많아지기 시작한 이유중의 하나가
미팅 나가서 첫인상이 안좋으니 재밌기라도 해야겠다. 는 이유였는데..
상당히 눈에 띠는 얼굴이지만 무섭고 사나워보이는 얼굴이라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은 안으로 표출되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상 좋은 사람은 접근도 쉬운데
나같은 사람은 눈에는 잘 띠나 사람들이 접근을 잘 안하게 된다.
그래서,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내가 한발자국 먼저 나갈때도 있었지만
주로 기다리는 성격이 되었다.

처음 나가는 모임같은데 말 붙여주는 사람. 누구나 좋아하지만,
나는 특히 정말 좋게 본다. 그래서 내가그런 사람이 되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인데..
웃긴건, 나도 무서운 얼굴한테는 접근을 잘 못해. ^^


3. 살사를 배우려고 이 동호회에 든지도 어언 한달이 조금 넘어가고
7주짜리 초급 강습이 이제 2주 남았다.

뒷풀이란 뒷풀이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사람들과 스치듯이 만나면서
깊다면 깊고 얕다면 얕은 얘기들을 주워듣고..
자발적으로 새로운사람들과의 만남을 만든건 정말 오랫만이라
부담이 많이 되었던건 사실이다.
더군다나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져 있는 시기인데도
무리없이 어울려가고 있으니, 사람들이 좋아서겠지.

참 좋다. 특히, 춤추는 표정과
자기가 아는것을 나에게 가르쳐주면서 짓는 그 표정들이 좋다.
아. 그것은 회사에서 차장님이 전에 내가
"그들만의 세계로 한발한발 빠져드는 기분이다"라는 표현을 썼을때
지었던 그 표정과 흡사하다.

처음이기 때문에, 첫단계에서 느낄수 있던 그 기분을 내가 느낄때
그리고 그들에게 말할때, 그들의 표정이 좋다.
이쪽세계에서 저쪽세계로 한발한발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저쪽세계사람들의 기분일까?

학교에서나 동호회에서나.
선배는 후배에게 해줄수 있는게 많은 법이다.

후배가 할수 있는건, 열심히 따라가는것이지.

4. 사람은 외로운 동물이라, 평생 고독한 존재다.
뭐 이런 말들을 많이들 한다. 나도 전부터 그런걸 많이 느껴와서
이런말을 자주 했다.
"애인생기고 결혼해도 세상은 혼자 사는거야"
하지만, 실제로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런류의 말을 들었을때는..

별로 기분이 좋질 않더라.
하지만 어쩌겠어. 그런 기분이 드는걸.
특히 떠들석한 모임이나 술집에서 갑자기 외톨이가 되버리는 기분
아는 사람은 알껄?

언제나 한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보며,
집단에 소속되길 즐기면서도 집단 밖에서 바라보길 좋아하는
성격을 지닌 내 숙명일까.

진정한 내 짝을 만나면 이런 기분이 없어질까 궁금하다.
누굴 만날때마다 정말 내 짝인거 같지만, 매번 아니였지.

자신의 외로움앞에서는
인간은 한없이 이기적이 되는가보다.


5. 생각이 많은 밤이다. 여러가지로.
Posted by ketchup